2019년 여름☀️, 스무 살의 나는 혼자 러시아로 떠났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해 하바롭스크, 이르쿠츠크, 예카테린부르크, 카잔, 모스크바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2019년 8월 6일부터 9월 1일까지, 총 27일간의 여행이었다.
그리고 도시와 도시 사이의 긴 거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이동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무 살에, 그것도 혼자 이런 여행을 어떻게 갔나 싶다.
영어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서 며칠씩 기차를 타야 했고 여행 기간은 거의 한 달이었다.
지금 누군가 스무 살에 혼자 시베리아 횡단여행을 가겠다고 한다면 나 역시 선뜻 "다녀와!"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꽤 단순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보고 싶었고, 마침 여행이 너무 가고 싶었다.
그 정도면 러시아에 가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2019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여행 🚂
여행기간 2019.08.06 ~ 09.01
여행일수 27일
여행형태 혼자
출발 블라디보스토크
도착 상트페테르부르크
열차에서 보낸 시간 약 7일

시험공부를 하다가 러시아행을 결정했다
2019년 여름, 나는 대학교 여름 계절학기를 듣고 있었다.
그것도 6학점.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수업을 듣고,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다시 수업을 들었다.
시험도 약 1주 반 간격으로 돌아왔다.
지금의 내가 당시의 나에게 왜 굳이 여름방학을 그렇게 보냈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ㅋㅋ
그렇게 시험공부를 하다가 문득 여행이 너무 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때 떠오른 게 시베리아 횡단열차였다.
언젠가 한 번쯤 꼭 타보고 싶었던 열차였다.
수많은 여행지가 있었는데 굳이 러시아를 골랐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특정한 도시를 꼭 보고 싶었다기보다, 기차를 타고 대륙을 가로지른다는 여행 방식 자체가 좋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가로질러 유럽 쪽까지 간다니.
스무 살의 나에게는 이보다 낭만적인 여행이 별로 없었다.
낭만에 죽고 낭만에 살던 스무 살이었다ㅎ
혼자 러시아에 가겠다고 통보했다
문제는 혼자 간다는 것이었다.
아빠의 반응은 당연히 반대였다.
혼자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도 걱정스러운데 목적지가 러시아이고, 여행 기간도 몇 주씩 되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기가 찰 만했다.
반면 엄마는 의외로 내 편이었다.
엄마도 젊었을 때 혼자 여행을 다녀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내가 가고 싶다면 다녀오라고 해주셨다.
결국 엄마의 설득에 아빠도 두 손을 들었다.
물론 나도 아주 모범적인 딸은 아니었다.
이미 러시아에 갈 생각으로 여권까지 새로 만들어놓은 상태였고, 비행기표 결제창을 앞에 두고 "나 갈 거예요"라고 말했으니...
사실 허락을 구했다기보다는 통보에 가까웠다ㅎ
심지어 내가 내세운 논리도 상당했다.
"말 안 하고 갈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말했잖아. 계속 안 된다고 하면 다음에는 말 안 하고 갈 거야."
지금 생각하면 아빠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미안해요 아부지...
근데 계속 말렸어도 아마 갔을 것 같다.
3주였던 여행이 갑자기 27일이 됐다
처음부터 한 달 가까이 러시아를 여행할 생각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동아리 합숙과 합주가 일주일 정도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합숙이 끝난 뒤인 8월 14일쯤 출발해서 8월 말에 돌아오는 약 3주짜리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합숙 장소 예약에 실패하면서 일정 자체가 무산됐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내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은,
"그러면 러시아에 일주일 더 있으면 되겠네?"
였다.
그래서 냅다 비행기 일정을 바꿨다ㅋㅋ
출발일을 8월 6일로 당겼고, 그렇게 3주였던 러시아 여행은 8월 6일부터 9월 1일까지 총 27일짜리 여행이 되었다.

지금이라면 한 달 가까이 해외에 나간다고 하면 숙소부터 이동 동선, 예산까지 미리 한참 찾아볼 것 같다.
그런데 당시에는 달랐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예약해야 했기 때문에 각 도시에 며칠 정도 있을지만 대략 정해두고, 나머지는 여행하면서 생각했다.
숙소도, 가볼 곳도 전부 완벽하게 정해놓고 출발한 여행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히 용감했거나 대단히 무모했다.
아마 둘 다였던 것 같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27일 동안 러시아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질렀다.
내가 지나간 도시는 다음과 같다.
블라디보스토크 → 하바롭스크 → 이르쿠츠크 → 예카테린부르크 → 카잔 → 모스크바 → 상트페테르부르크
당시 계획을 기준으로 대략적인 체류 기간은 이랬다.
| 블라디보스토크 | 2일 |
| 하바롭스크 | 2일 |
| 이르쿠츠크 | 4일 |
| 예카테린부르크 | 2일 |
| 카잔 | 2일 |
| 모스크바 | 4일 |
| 상트페테르부르크 | 5일 |
| 🚂 열차 | 약 7일 |
도시에서 보낸 시간만큼이나 열차 안에서 보낸 시간도 길었다.
전체 여행 중 약 일주일을 기차 안에서 보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도 기차 안이고, 밥을 먹고 한참을 보내도 여전히 기차 안이었다.
잠들었다가 다시 눈을 뜨면 열차는 계속 어딘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기차가 달리면서 시차도 변경되어 시간을 건너뛰는 경험도 했다.
창밖의 풍경은 조금씩 달라지는데 목적지는 여전히 한참 멀리 있었다.
비행기를 타면 몇 시간이면 건너갈 거리를 며칠에 걸쳐 천천히 이동하는 것.
그게 내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가장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이기도 했다.

여행비는 모아둔 용돈으로
당시 기억으로 환율은 1루블에 약 18원 정도였다.
여행을 위해 부모님께 따로 큰돈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설날이나 추석에 받은 용돈을 모아둔 돈이 있었고, 그 돈을 여행 경비로 사용했다.
당시 수중에 있었던 돈은 백몇십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27일을 여행하다 보니 결국 돈이 부족해져 여행 도중 부모님께 용돈을 조금 받기는 했다ㅎ
그리고 그때의 나는 여행 경비를 꽤 꼼꼼하게 기록했다.
지금의 나는 여행을 다녀오면 카드 내역을 보면서 '대충 이 정도 썼겠지...'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과거의 나는 달랐다.
과거의 나 칭찬해.
덕분에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당시 기록과 사진을 들여다보면 잊어버렸던 여행의 조각들이 하나씩 다시 맞춰진다.
정확히 어디에서 얼마를 썼는지, 어떤 열차를 탔는지 같은 기록도 남아 있어서 앞으로 하나씩 정리해볼 생각이다.
이 여행 이후 혼자 여행을 좋아하게 됐다
물론 27일 내내 낭만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짧게 외워간 러시아어와 바디랭귀지로 의사소통해야 하는 순간도 많았고, 혼자라서 무섭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 누군가에게 아무 조건 없이 "혼자 시베리아 횡단여행 꼭 가봐!"라고 추천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조금 고민할 것 같다.
그런데도 다시 2019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아마 또 갈 것 같다.
스무 살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무모함도 있었고,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난 순간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 여행을 마치고 나서 혼자서도 생각보다 많은 곳에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러시아 여행 이전에도 여행 자체는 좋아했지만, 혼자 여행하는 재미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래서 내게 2019년 러시아 여행은 단순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한 번 타본 여행이라기보다 이후의 여행 방식을 바꿔놓은 출발점에 더 가깝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27일.
6년이 훌쩍 지나 기억이 흐릿해진 부분도 있지만 다행히 당시의 사진과 기록은 아직 남아 있다.
그 기록들을 하나씩 꺼내보면서 스무 살의 내가 러시아를 어떻게 가로질렀는지 다시 채록해보려고 한다.
다음 글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27일 동안 어떤 도시를 거쳤는지, 시베리아 횡단여행 전체 일정과 루트를 정리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