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6일.
27일간의 러시아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혼자 비행기에 올랐다.

첫 번째 목적지는 블라디보스토크.
당시에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는 의미로 ‘가장 가까운 동유럽’ 같은 표현으로 소개되며 한국인 여행객에게 꽤 인기 있던 도시였다.
나에게는 블라디보스토크 자체를 여행한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이어지는 긴 시베리아 횡단여행의 출발점이라는 의미가 더 컸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보낸 시간은 단 이틀.
그런데 첫날부터 공항에서 밤을 새우고, 이틀 내내 비를 맞고, 러시아어만 가득한 세상에 떨어지는 등 앞으로 이어질 한 달 여행을 꽤 압축적으로 예고해준 도시였다. ☔
블라디보스토크 2일 여행 일정 🗺️
내가 실제로 다녔던 일정은 이랬다.
8월 7일|블라디보스토크 시내
파이브어클락(카페, 간단한 아침) → 아르세니예프 박물관 → 잠수함 박물관 → 쁘할리 힝칼리 (점심)
시내를 돌아보고 저녁에는 야경투어를 할 예정이었지만, 비 때문에 투어가 취소됐다.
8월 8일|루스키섬 투어
마약등대 → 아쿠아리움·돌고래쇼 → 노빅식당 → 다비지나곶 → 유리해변 → 중국시장 → 독수리전망대
그리고 여행을 마친 뒤 저녁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역으로 이동했다.
21:52 하바롭스크행 열차 탑승 🚂
이 열차가 앞으로 수도 없이 타게 될 러시아 기차의 첫 시작이었다.
1일차|새벽의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오후 9시 40분 비행기였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한 건 새벽 2시쯤.
문제는 이 시간에 시내로 들어갈 마땅한 교통편이 없었다는 것.
그래서 스무 살의 나는 아주 간단한 결론을 내렸다.
그냥 공항에서 첫차를 기다렸다.

지금이라면 절대 이렇게 일정을 잡지 않을 것 같다.
정 새벽 도착 비행기를 타야 한다면 택시부터 알아봤을 텐데, 당시에는 여행 첫날부터 너무 자연스럽게 공항에서 밤을 새웠다.
첫 혼자 여행부터 공항 노숙이라니.
스무 살의 체력과 패기는 꽤 대단했다...🙂
첫차를 기다리는 동안 공항에서 유심도 샀다.
당시 기록을 보니 유심은 500루블, 공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시내까지 이동하는 열차는 250루블이었다.
물론 모두 2019년 당시 가격이라 현재 여행 정보로 참고하기에는 어렵다.

그런데 당시 찍어둔 공항철도 시간표를 지금 다시 보면 꽤 재미있다.
외국인 여행객이 많이 이용할 공항에 있는 시간표인데 내가 찍어둔 사진에서 찾을 수 있는 영어는 사실상
'Timetable suburban trains'
정도였다.
나머지는 러시아어..
이때부터 앞으로의 여행이 쉽지만은 않겠다는 걸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영어는 잠시 잊는 편이 좋겠구나.
그리고 이 예상은 꽤 정확했다ㅋㅋ
러시아에서 처음 타본 공항철도 🚃
아침 7시 반쯤 열차가 들어왔다.
당시 사진의 촬영 시간이 오전 7시 34분으로 남아 있다.

문제는 지금 와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열차표를 어떻게 샀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것.
7년 전의 기억은 이렇게 중요한 부분부터 아주 깨끗하게 증발해 있다.
다행히 당시 사진과 캘린더 기록이 꽤 많이 남아 있어서, 이번 시베리아 횡단여행 시리즈를 쓰면서 하나씩 퍼즐을 맞추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뒤 찾아간 숙소는 슈퍼스타 게스트하우스였다.

기록상 1박에 약 18,000원.
저렴했지만 깨끗하고 괜찮았던 숙소로 기억한다.
재미있는 건 지금은 해외 숙소를 예약할 때 주로 다른 예약 서비스를 사용하는데, 이 여행에서는 거의 부킹닷컴으로 예약했다는 것.
7년 전의 나는 왜 그랬을까.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비 오는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걷다 ☔
짐을 풀고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사진을 보면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 있다.
여행 직전까지 여름 계절학기를 두 과목이나 듣고 있었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수업을 듣고, 다시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수업을 들으면서 시험까지 치르고 나니 꽤 지쳐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내다가 러시아에 도착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다를 보고 있으니,
드디어 진짜 여행을 왔구나 싶었다.
이 순간만큼은 계절학기의 고통도 조금 사라지는 것 같았다.
첫날에는 파이브어클락 카페를 시작으로 아르세니예프 박물관, 잠수함 박물관 등을 둘러보고 쁘할리 힝칼리에서 식사를 했다.
아르바트 거리 근처 바다도 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날씨가 계속 흐렸다.
비도 왔다. ☔
원래 이날 저녁에는 따로 야경투어까지 신청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비 때문에 결국 취소.
당시에는 꽤 아쉬웠다.
그래도 밤에 내가 돌아다니면 그게 야경투어지!
라고 생각하고 그냥 저녁에도 혼자 시내를 돌아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여행 첫날부터 내 여행 방식이 꽤 잘 드러난다.
계획이 틀어지면 그냥 다른 걸 하면 됐다.
2일차|비를 뚫고 루스키섬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두 번째 날이자 마지막 날.
이날의 메인은 루스키섬 투어였다.
당시에는 여러 명이 모여야 투어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직접 함께 갈 사람들을 모집해서 다녀왔다.

당시 이용했던 건 자술투어였고, 기록을 보니 1인 2,000루블(36,000원)이었다.
투어 일정은 꽤 알찼다.
마약등대 → 아쿠아리움 → 노빅식당 → 다비지나곶 → 유리해변 → 중국시장 → 독수리전망대
아쿠아리움과 돌고래쇼는 선택 일정이었는데 우리는 둘 다 보기로 했다.
당시 온라인으로 따로 예약했고 가격은 1,200루블.

심지어 어느 좌석이 좋은지도 찾아보고 예매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계획 없이 여행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걸 보면 은근히 알아볼 건 다 알아보고 다녔다.
그런데 이날도 문제가 하나 있었다.
또 비가 왔다.
결국 우비를 입고 루스키섬을 돌아다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보낸 이틀 중 이틀 모두 날씨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지금 남아 있는 사진을 보면 파란 하늘 아래 블라디보스토크를 여행한 기억보다 회색 하늘과 우비가 먼저 떠오르는 이유가 있다. 🌧️
7년 뒤 다시 매겨보는 블라디보스토크 추천도
⭐⭐☆☆☆
블라디보스토크는 내게 꽤 의미 있는 도시다.
처음 혼자 떠난 장거리 해외여행의 첫 도시였고, 여기서부터 27일 동안 러시아를 가로지르는 여행이 시작됐으니까.
하지만 여행지 자체만 놓고 다시 평가한다면 내 취향에는 조금 아쉬운 편이었다.
도시 규모가 생각보다 작아서 주요 장소를 둘러보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고, 당시에는 단체 관광객도 많아 내가 기대했던 러시아 특유의 분위기를 여유롭게 느끼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이틀 내내 비가 온 것도 평가에 꽤 큰 영향을 줬을 것 같다.
날씨가 좋았다면 인상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루스키섬처럼 시내 밖으로 나가보는 일정이 있어서 이틀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간다면 블라디보스토크에 오래 머무르기보다는 시내를 짧게 둘러보고 근교 일정을 함께 넣는 방식으로 여행할 것 같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2019년에 직접 여행하고, 2026년에 다시 돌아본 개인적인 감상이다.
그리고 드디어, 시베리아 횡단열차 🚂
루스키섬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날 준비를 했다.
다음 목적지는 하바롭스크.
열차는 2019년 8월 8일 오후 9시 52분 출발, 다음 날 오전 9시 54분 도착하는 야간열차로 예약했다.
밤에 이동하면 열차에서 자는 동안 다음 도시로 갈 수 있으니 숙박비도 아끼고 이동시간도 활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효율적인 계획이었다.
적어도 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다음편은 얼렁뚱땅 첫 열차 탑승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