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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유럽여행

[시베리아 횡단여행] 7. 하바롭스크 → 이르쿠츠크 열차 Day 1

by 채록_ 2026. 9. 9.

하바롭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8월 10일 오후 3시에 출발해서
8월 13일 새벽 3시 7분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총 60시간 7분.

 

앞으로 이틀 반 동안
먹고, 자고, 씻는 것까지 전부 이 열차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기 전에는

창밖 풍경도 보고,
따뜻한 차도 마시고,
책도 읽으면서 가는...

그런 낭만적인 기차여행을 상상했던 것 같다.

 

과연 실제로도 그랬을까?

시베리아 횡단열차 3등석은 어떻게 생겼을까?

내가 예약한 좌석은 3등석 플라츠카르타였다.

칸마다 문이 달려 있는 2등석 쿠페와 달리
3등석은 객차 전체가 개방되어 있는 구조다.

내 자리는 객차 끝쪽에 가까운 아래층이었다.

생각보다 괜찮았던 내 자리

처음 열차에 탔을 때
내 맞은편에는 모녀가 타고 있었다.

열차 맞은편 모녀
열차 맞은편 모녀

 

마주 보는 좌석 사이에는 작은 테이블이 하나 있다

60시간을 여기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타기 전에는 조금 걱정했는데...

 

막상 앉아보니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

 

침대도 생각했던 것보다 편안했고,

객차 안은 오히려 살짝 서늘한 정도였다.

 

나는 원래 어디서든 잘 자는 편이라
잠자리 때문에 고생하지도 않았다.

아래층을 고른 건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아래층이라 낮에도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고
누워 있고 싶으면 그냥 누우면 됐다.

무엇보다 60시간을 보내야 하니
내 자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점점 중요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60시간? 할 만한데?

라고 생각했다.

 

이때까지만...

횡단열차에서 휴대폰 충전은 가능할까?

60시간 동안 열차를 타야 한다면
은근히 중요한 게 하나 있다.

바로 콘센트.

휴대폰도 써야 하고
보조배터리도 충전해야 하는데
콘센트가 없으면 상당히 곤란하다.

다행히 내가 앉아 있던 테이블 아래를 보니

 

콘센트는 테이블 아래에 있다

콘센트가 있었다!

테이블 아래에서 발견한 콘센트

위치가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충전 자체는 가능했다.

2019년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열차 내부 정보를 자세히 찾아보기도 어려워서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직접 확인할 때마다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2층자리 콘센트는 2층에 있어서 싸울 일은 없다ㅋㅋ

 

객차에는 열차 시간표도 붙어 있었다.

열차 내 시간표
열차 내 시간표

시간표 제일 왼쪽에 써있는게 시간대인데,

이걸 보니 새삼 러시아가 얼마나 큰 나라인지 실감났다.

한 나라 안에서 시간대가 계속 바뀐다.

 

내가 탄 방향은 왼쪽 방향이고 첫 사진 위쪽 15:00 khabarovsk에서 출발해서

두 번째 사진 3:37에 irkutsk passazvirski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3등석 화장실은?

60시간을 타야 한다고 하면
아마 제일 궁금한 것 중 하나가 이거 아닐까?

그래서... 씻는 건 어떻게 하지?

결론부터 말하면

제대로 씻는 건 포기했다.

화장실은 비행기 화장실과 비슷했다

화장실은 전체적으로
비행기 화장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열차 내 화장실 변기
열차 내 화장실 변기
열차 내 화장실 세면대
열차 내 화장실 세면대

작은 세면대와 변기가 있고
공간도 좁았다.

그리고...

냄새도 조금 났다.

 

오래된 열차 + 비행기 화장실

을 합쳐놓은 느낌.

60시간 동안 머리는 드라이샴푸로 버티기

나는 이럴 줄 알고 한국에서
드라이샴푸를 챙겨갔다.

머리는 드라이샴푸로 어떻게든 해결하고
나머지는 대충 씻으면서 버텼다.

첫날에는 괜찮았다.

진짜다.

아직은 괜찮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였다.

씻고 싶다...

인터넷도 잘 안 되는데 60시간 동안 뭐 하지?

열차가 도시를 벗어나기 시작하면
인터넷도 거의 되지 않았다.

데이터가 잡히는 건
정차역이나 도시 근처를 지나갈 때 정도.

그마저도 안정적으로 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횡단열차를 탈 계획이라면
볼거리는 무조건 미리 다운로드해 가는 걸 추천한다.

셜록홈즈 보고, 러시아어 공부하고, 자고...

나는 넷플릭스에서
셜록홈즈를 미리 다운로드해 갔다.

그래서 열차 안에서는

셜록홈즈 보다가,

자다가,

러시아어 공부하다가,

창밖 보다가,

다시 자다가...

대충 이런 생활을 반복했다.

그래도 시간은 안 간다

창밖 풍경은 처음에는 정말 신기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초록색 평야와 숲.

가아아아끔 작은 마을.

그리고 다시 초록.

또 초록.

계속 초록...

처음에는 창문에 붙어서 구경했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비슷한 풍경이 계속된다.

예쁘긴 예쁜데 살짝.. 질린다😂

 

러시아 진짜 크구나.

 

지도에서 볼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직접 열차에 앉아서
몇 시간을 달려도 끝나지 않는 풍경을 보고 있으니

러시아의 크기를 몸으로 체감하는 기분이었다.

첫날 밤, 갑자기 러시아 군인들이 말을 걸어왔다

처음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모녀는
저녁이 되자 열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날 밤.

 

근처에 있던 군인들이
내 자리로 찾아와 말을 걸기 시작했다.

 

20대로 보이는 남자들이었는데
상의는 녹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바지는 군복이었다.

 

아마 동양인 여자애가 혼자 여행하고 있는 게
신기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엄청 경계했다.

아니 갑자기 왜 나한테 말을 거는 거지?

혼자 여행 중인데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남자들이 여러 명 다가왔다.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시작해보니
질문 자체는 평범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러시아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는지,

러시아 음식은 맛있었는지.

 

그런 것들을 물어봤다.

문제는...

나는 러시아어를 못하고
이 친구들은 한국어를 못한다.

 

번역기와 바디랭귀지를 총동원해서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러시아어를 못해도 대화가 됩니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러시아어는
정말 몇 마디 되지 않았다.

그중 가장 자신 있던 단어가

다(Да).

'네'라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점점 이상해졌다.

 

군인 : 러시아어로 어쩌고저쩌고

나 : 다.

군인 : 어쩌고저쩌고

나 : 다다.

군인 : 어쩌고저쩌고저쩌고

나 : 다...

다. 다다. 이것만으로 이어진 대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군인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분위기상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얘 다다밖에 안 하는데 너네 대화가 되냐?"

ㅋㅋㅋㅋㅋㅋㅋ

 

나도 모르겠다.

그런데...

대충 되는 것 같긴 했다.

말은 하나도 안 통하는데
표정이랑 손짓이랑 번역기를 섞으니

어찌어찌 대화가 이어졌다.

러시아 군인들이 내 갤럭시 S10 5G를 가져간 이유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군인들의 관심이 갑자기 다른 곳으로 향했다.

 

내 휴대폰.

 

당시 내가 사용하던 휴대폰은
그해 새로 출시된 갤럭시 S10 5G였다.

 

군인들은 내 휴대폰을 보더니
러시아에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면서 신기해했다.

 

그리고

한번 봐도 되냐고 물었다.

 

그래서

어... 그래.

하고 건네줬는데...

구경한다더니 왜 셀카를 찍고 있지?

휴대폰을 가져간 군인들이
이것저것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내 폰으로 자기들끼리 셀카를 찍었다ㅋㅋㅋㅋ

 

군인 둘의 셀카📸
군인 둘의 셀카📸

 

아니...

폰 구경한다며ㅋㅋㅋㅋㅋ

7년째 내 사진첩에 남아 있는 셀카

그때 찍힌 사진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당시에는 그냥 웃겼는데
몇 년이 지나서 다시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이것도 꽤 재미있는 여행의 흔적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을
내가 찍어준 것도 아니고

본인들이 직접 내 휴대폰에 기록을 남겨놓고 갔다.

아직도 뜻을 모르는 러시아어 한 문장

군인들은 나에게
러시아어도 이것저것 가르쳐줬다.

그중에는 어떤 문장 하나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뜻을 제대로 안 알려줬다.

 

그리고 나중에 자기들 앞을 지나갈 때
아까 가르쳐준 말을 한번 해보라고 했다.

음...

잠깐만.

이거 진짜 말해도 되는 거 맞아?

뭔지는 모르겠는데
갑자기 찜찜했다.

 

뜻도 안 알려주면서
자기들 앞에서 말해보라고 한다?

 

수상하다.

 

그래서 결국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문장이 무슨 뜻이었는지는 모른다.

그렇게 횡단열차에서의 첫날이 지나갔다

혼자 시베리아 횡단열차 3등석에 올라탔을 때만 해도

앞으로 60시간 동안
대체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나 걱정했다.

 

그런데 첫날부터

낯선 군인들이 말을 걸어오고,

러시아어도 몇 마디 주워듣고,

다. 다다.

만으로 대화도 해보고,

내 휴대폰에는
처음 만난 러시아 군인들의 셀카까지 생겼다.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횡단열차 여행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모녀가 내린 뒤 비어 있던 맞은편 자리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40~50대로 보이는
러시아 아저씨들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이 아저씨들이 나한테 먹을 것을 잔뜩 나눠주고,

보드카도 한잔 주고,

'하라쇼' 하나로 대화하는 법까지 가르쳐주고,

 

급기야 전날 만난 군인들과 분위기가 험악해져
열차 사무장까지 등장하게 될 줄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의 두 번째 날은
첫날보다 더 정신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